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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광] 변함없는 봄

 

w. 투이트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니 이것저것 변한 것이 주변 풍경을 보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커져버린 몸도, 새로 받은 교과서도, 반 친구들도. 하지만 변함없는 것도 꽤 있었다. 지금 가는 피시방과 내가 입고 있는 못생긴 교복, 옆에 있는 내 친구 서은광. 그리고 변함없이 짝사랑을 하는 중이라는 사실 또한 변하지 않았다. 그 상대가 나랑 같이 걷고 있는 요 눈치없는 멍청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넌 아직도 쌀쌀한 날씨 탓을 하기 바빴다.

 

- 인간적으로 너무 춥다.. 봄은 언제 오지?
- ..봄이 있던가?

 

내 말에 너무 잔인하다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귀여웠다. 늘 그래왔다. 내가 짓궂은 말을 할 때 나오는 네 반응이 여간 짜릿한 게 아니다. 앙탈을 부릴 때도, 삐쳐서 입이 쭉 나올 때도, 어설프게 버럭 화를 낼 때조차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생긴 건 꼭 고양이처럼 생겨서는 행동은 강아지와 비슷할 때가 많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더욱 서은광스러웠고 좀처럼 마음을 접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머리를 긁적이던 그때, 상당히 추운지 손으로 계속 팔을 문지르는 네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 상당히 추워?
- 그냥.. 좀?

 

간간이 이가 서로 맞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조금 추운 게 아니란 걸 눈치챈지는 오래다. 추위도 잘 타는 놈이 이상하게 옷은 늘 얇게 입고 나온다. 지난 늦가을에도 얇게 입고 놀다 독감에 걸린 건 이제 옛날 일인가 보다. 하지만 나는 서은광이 얇게 입는 게 더 좋다 느끼는 바다. 얇은 옷 위로 드러나는 너의 몸 선이 곱다. 특히 허리. 남자인지라 특별히 얇은 건 않지만 허리에 팔을 두를 때 느껴지는 얄쌍함과 체육복을 갈아입거나 할 때 보이는 이쁜 허리 굴곡이 내 목덜미 부근을 달아오르게 했다. 상상하자 더워진 느낌에 입고 있던 겉옷을 벗었다. 그리고 너에게 던졌다. 난 입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다는 느낌으로. 아무래도 좀 멋지게 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머쓱해진 한편, 넌 당황스러운 건지 연신 손사래를 치며 옷을 건네줬다.

 

- 나.. 괜찮은데...
- 입어. 그렇게 덜덜 떨면서 뭐가 괜찮아.
- ..고마워.

 

정말로 고마운 듯 해맑게 웃는 너의 얼굴이 내 심장을 아프게 했다. 햇살과 같이 따듯한 미소. 입지 않아도 춥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의 발그레한 볼을 붙잡고 뽀뽀해버리고 싶어졌다. 일단 손으로 너의 얼굴을 감싼다. 당황할 틈조차 주지 않고 먼저 이마에 살짝 입술을 대자 놀라는 너의 표정이 볼만하다. 능청스럽게 왜 그러냐며 웃다가 코를 살짝 비비며 눈을 감고 그대로 입을 맞춘다. 가볍게 아랫입술 갖고 장난치다 고개를 틀어 너의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너의 얼굴을 감싼 내 손이 더욱 깊게 들어가도록 도와줄 것이다. 맞닿은 가슴을 통해 서로의 심장박동소리가 느껴지고 콧바람이 볼에 닿아 간지럽다. 그리고 내 옷을 부여잡고 어쩔 줄 모르는 너의 모습은 심히 귀엽다.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어? 아니 그냥..
- 막 추워서 헤까닥 한건 아니지? 이... 이거 다시 입을래?
- 어차피 거의 다 왔는데 뭐. 괜찮아.

 

또 정신을 놓아버렸다.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란 것을 깨닫고 난 후로 자주 그랬다. 그러다 네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널 안고 사랑한다. 내 품에 안겨 쾌락에 울부짖으며 사랑을 외치고 나에게 입을 맞춰오곤 했다. 눈을 뜨자 느껴지는 달뜬 숨과 손에 잔뜩 묻은 희멀건 정액. 난 너에게 욕정이 일었다. 끔찍하게도 나란 인간은 그랬다. 얄궂게도 상상은 항상 달콤했다. 복잡함에 머리를 헝클어버렸다. 그새 피시방에 도착했다. 빨리하자며 계단을 내려가려던 너를 붙잡았다. 더 이상 상상만 하기 싫었다.

 

- 야. 서은광.
- 으응? 뭐 할 말 있어?
- 내가...
- ...?
- 너...... 개 발라줄 거임. 각오해라.


턱 끝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구겨 넣었다. 의아한 너를 두고 약 올리듯 먼저 피시방에 들어왔다. 터질듯한 가슴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머리 위에서 빛나는 조명이 더 붉었다. 머리를 헝클이며 본체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의자에 몸을 뉘었다. 바보 같았다. 아니 바보다. 내 감정 하나 털어놓지 못하는 병신. 하지만 뭐 어떠냐. 입 밖으로 내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뭐 어떤가. 이렇게 네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 항상 봄날인데. 어느새 내 옆에 앉은 너에게 오늘도 속으로 외쳐본다.

 

좋아해. 서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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