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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창섭] 벚꽃나무

 

 

w. 우린

 

 

 

 

 

 

 

 

정치를 하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내조하시는 어머니,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그저 장식품에 불과한 나. 나에게 가족이란 이랬다. 그저 껍데기뿐인,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학교에 가면 항상 선망의 눈길이 따랐다. 부럽다, 좋겠다, 하며 지켜만 보는 아이들과 나의 주변에서 무언가 얻어내려고 하는 아이들. 학교에서 아이들은 그렇게 두 분류로 나뉘어졌다.

 

 

"성재야, 오늘 쏠거지?"
"오늘은 뭐 쏠거야? 햄버거? 피자? 치킨?"
"야야 그냥 성재한테 다 사달라고 하자, 얘네 집 부자잖아."

 

 

얘네 집 부자잖아, 돈 많잖아 얘. 항상 지갑에 가득한 초록빛 지폐들을 보며 아이들은 그것을 얻어내고자 나에게 온갖 아양을 떨었다.

 

 

"성재야 이거 사주면 안돼?"
"나는 이거! 이거 사주라."

 

 

한 명이 시작하면 우르르, 달려들어 나에게 각종 금품을 요구했다. 어려서 망정이지 저들은 이게 과연 나쁜 짓인지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루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듣지 말았어야 할, 들으면 안 되었을 이야기를 듣고야 말았다. 중학교 2학년때였다.

 

 

"야 육성재네 부자라면서. 얼마나 얻어먹었냐?"
"몰라. 그냥 맨날 얻어먹어."
"쪽팔리지도 않냐?"
"그 새끼가 그냥 지갑을 여는데 내가 뭐하러 쪽팔려야돼? 그 새끼는 지 아빠가 벌어다준걸 그냥 막 써재껴. 지 돈도 아니면서."

 

 

그 자리에서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와 그 새끼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다. 바닥에 눕힌 채 쉴 틈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같이 있던 놈이 도망가고 계속 그 새끼를 때리자 어느 순간 기절한 듯 움직이지 않았다. 분이 덜 풀려 일어나 발로 배를 몇 번 때리자 그 새끼는 정신이 든 듯 몸을 비틀었다.

 

 

"그 새끼? 지 아빠? 막 써재껴? 지 돈도 아니면서? 말 다했지, 너. 응?"
"ㅇ, 아 그게 아니라 성재야.."
"어디서 그 더러운 입에 내 이름을 올리고 지랄이야. 개같은 새끼."

 

 

발로 옆구리를 한번 더 치고 화장실을 나왔다. 그 날로 나는 학교에서 징계처리를 당하고 그 같잖은 돈 많은 아버지가 얻어준 선생님과 중학교 과정을 함께 공부했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다녀야 되지 않겠냐며 나를 설득한 엄마 때문에 이미 소문이 퍼진 이 동네가 아닌 시골 마을로 가게 되었다.

 

 

"이런 데 싫다니까."
"어쩔 수 없어. 고등학교까지만 참아. 아까 엄마가 한 말 무슨말인지 알지?"

 

 

어어, 대충 얼버무리곤 준비 된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있어야 하는 엄마 때문에 집 관리는 가정부 아주머니가 하시게 되었다. 짐이 다 풀려있는 방에 들어가 침대에 털썩 누웠다. 다음주면 학교에 가게 된다. 너무 오랜만에 가게 되는 학교라 적응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나중에 하기로 했다. 피곤함에 눈이 감겼다.


일주일이 지나고 고등학교 첫 학기가 시작 되었다. 아주머니가 준비해 두신 아침밥을 먹고, 아주머니가 다려놓으신 교복을 입고 일년 반 만에 다시 학교에 가게 되었다.

 

 

"저 가요."
"다녀오세요. 친구들 잘 사귀시구요."
"엄마에 아줌마까지, 얼마나 부담주시려고 그래요."
"사모님이 부탁하셨어요, 이 말씀 꼭 전해드리라고요. 다녀오세요 도련님."

 

 

새학기 첫 날부터 학교에 돈 많은 아이라는 걸 티내고 싶지 않아 학교까지 걸어갔다. 시골이라 그런건지 덜 닦인 도로 옆으로 논과 밭들이 빼곡했다. 공기도 맑고, 파아란 하늘과 초록빛 나무들이 조화를 이뤘다. 그 사이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작은 꽃들도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어느새 저 멀리 학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골 분교라 학생은 몇 없는 학교였지만 운동장에 잔디도 깔려있고 전혀 시골 분교로 보이진 않았다. 아, 학교 벽에 칠해진 색색의 페인트들은 빼고 말이다.

 

 

"어, 들어와."

 

 

교무실을 찾아가 노크를 하자 안쪽에서 젊은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계시는 한 선생님이 계셨다.

 

 

"성재니?"
"아, 네. 안녕하세요."
"어, 나는 학생주임 겸 1학년 담임 서은광. 만나서 반갑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자기소개를 하는 선생님께 인사를 했다. 앉아, 하며 앞자리를 가리키는 선생님에 발을 옮겨 자리에 앉았다.

 

 

"그래, 보통 고등학교때 여기로 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긴 한데 우선 어머니랑 말씀 나눠봤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길게. 우리 학교는 분교라서 전교생이 20명이 채 안돼. 1학년은 너 포함해서 6명, 2학년, 3학년은 5명이야. 학년별로 한 교실씩 쓰고 있고, 아이들도 착하니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거야. 앞으로 잘 지내보자."

 

 

네, 짧게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가자, 하며 선생님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얌전히 따라가자 1학년 교실이라 붙어있는 곳에 도착했다.


들어가 선생님의 옆에 서자 뒷 자리에 앉은 하얀 아이가 눈에 띄었다. 말랑말랑한 찹쌀떡 마냥 볼을 콕 찌르면 들어갈 것만 같아 보였다.

 

 

"성재야? 인사해야지."
"아, 서울에서 온 육성재라고 해. 잘 부탁한다."
"그래. 창섭이 손들어봐. 어, 보이지? 성재는 창섭이 옆에 앉아."

 

 

무기력하게 손을 든 하얀 아이의 이름은 이창섭이었다.

 

 

*

 

 

"성재야 너 어디살아?"
"성재야 나 너 번호좀!"
"성재야 왜 서울에서 여기로 왔어?"
"우와, 성재야 너 육씨야? 짱 신기해."

 

 

성재야, 성재야. 질리도록 내 이름이 불려댔지만 정작 그 아이는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반 아이들, 그래봤자 이창섭과 나를 빼고 넷이었지만 그들 모두가 내 자리에 모여 신기한 물건을 구경하듯 쉴새없이 여덟개의 눈을 굴렸다. 더불어 넷의 입도 바삐 움직였다. 나는 그들이 아닌 이창섭에게로 눈을 두었다.

 

 

"......"

 

 

닫힌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여 이창섭에게로 향했던 두 눈을 주변에 모인 넷으로 돌렸다. 내가 저들을 쳐다보는것에 당황했는지 잠시 말을 멈추는듯 했으나 이내 저들끼리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여기로 전학오는 사람은 진짜 없는데, 우린 다 여기 토박이거든."
"아, 맞아 맞아. 성재야, 너는 여기 왜 온거야?"

 

 

생각해보니 학교에서 내가 이 곳에 온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 같았다. 담임선생님과 내 주변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랬다.

 

 

"...아파서."

 

 

겨우 고민해낸 답이 저거라니.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에 거짓말이란게 드러날까 시선을 내리니 아아, 하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어디가 아픈데?"
"...어... 우울증... 같은거?"

 

 

에휴, 첫 날부터 거짓말만 늘어가는구나. 떠올린 게 고작 저런 것밖에 안되는 수준이었나 싶어 저 자신을 자책했다. 가라 앉은 분위기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수업종이 울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분위기를 망쳐놓은 나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고.

 

 

*

 

 

첫 날임에도 불구하고 순조롭게 시간은 흘러갔다. 첫 날이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했다. 종이 치고 시끌벅적하던 교실이 다시금 조용해졌다.

 

 

"자리에 앉아라."

 

 

담임선생님이 들어오니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반 아이들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성재랑은 다들 친해졌나 모르겠네. 성재는 괜찮았니?"

 

 

네, 뭐. 짧게 대답하곤 멋쩍게 웃었다. 내 대답이 나쁘진 않았는지 담임선생님은 다시 종례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새학기 첫날인데도 불구하고 잘 따라줘서 고맙고, 앞으로 더할것도 없고 딱 오늘만큼만 부탁한다. 오늘 종례는 여기까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앉아있던 이창섭이 일어났다. 뭐야, 아직 안끝났는데?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하는 여러명의 목소리와 함께 교실에서 하나 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얘 반장이었어?

 

 

"야, 창섭아. 오늘 뭐하냐?"
"뭐하긴 임마, 공부해야지."
"새끼, 반장 티내냐?"
"어, 넌 공부 좀하고 임마."

 

 

창섭이 말을 걸었던 아이의 어깨를 툭툭, 치곤 가방을 둘러메곤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벙벙한 표정으로 옆에 앉아있는 날 이제야 본듯 한 그 아이는 잘가, 라는 무심한 말과 함께 교실을 나갔다.


뭔가 굉장히 속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

 

 

가방을 메고 학교를 나서자 아침에 보았던 시골 풍경들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며칠 보다 보면 지겨워질 만한 그림인데 왜 그리 계속 눈이 가는지 모를 따름이었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요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그래, 뭐 조용한거야 항상 있었던 일인걸. 가방을 내려놓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 위에 앉았다. 학교, 담임선생님, 교실, 반 아이들, 그리고 이창섭. 그래, 학교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했고, 또 평화로웠다. 반 아이들도 다 착하고 괜찮아보였고. 다만 문제가 되는게 있다면 역시 이창섭이라는 존재였다. 도대체 뭘까, 공부는 더럽게 못하게 생겨가지곤. 아 물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반장이라니. 혹시 반장이 아파서 빠진거 아닐까? 아, 1학년이 여섯 명이라고 했지. 그럼 이창섭이 반장이라고 쳐, 도대체 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결국 성재 스스로 백기를 들었다. 반장이면 어떻고 짝꿍이면 뭐 어때. 그냥 나는 나대로 사는거야. 결론을 내린 성재가 뿌듯하단 듯 입꼬리를 올렸다.

 

 

*

 

 

학교에 간 지도 어언 한 달이 다 되어갔다. 달라진 점이라곤 이창섭과 많이 친해졌다는 점이었다. 짝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다시 학교에 다니면서 깨달은 점은 학교는 다닐 만 하다는 것이었다. 학생 수가 적어서 그런 것 일수도 있겠지만 중학교를 다닐때 보다는 확실히 반 아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것도 그렇고 이건 비밀이지만 밥이 엄청 맛있다. 웬만한 가정부 아주머니들보다 맛있는 음식 솜씨에 성재가 박수를 칠 정도였으니.


요즘엔 학교 가는 길에 이창섭을 만나 같이 걸어간다. 이것도 몰랐던 사실인데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창섭의 집이 있었다. 창섭의 집 앞에는 벚꽃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맺힌 꽃몽우리들이 막 떨어지려 하던 날이었다.

 

 

"이창섭 빨리 나와!"
"아, 나간다고!"

 

 

이게 지금 시간이 얼마나 남은 줄 알고 그렇게 천하태평이야, 또 뛰어갈래?

 

 

"아 쪼옴,"
"오올, 뭐냐? 머리 존나 귀여운데?"

 

 

놀리지 마라, 창섭이 성재를 째려보았다. 뭐, 뭐, 그렇게 째려보면 내가 안놀릴 줄 알고?

 

 

"아 몰라. 건들지마. 내 머리 가지고 뭐라 하면 앞으로 너랑 같이 학교 안가."

 

 

거짓말 하고 있네. 나 아니면 누가 너랑 같이 학교 가주냐?

 

 

"흥, 완전 많거든."
"거짓말."
"진짜거든."
"누구있는데."
"현식이."
"또"
"민혁이형."
"또."
"...아 몰라 아무튼 같이 학교 갈 사람 많으니까 머리애기 하지마."

 

 

응. 그래 호섭아. 우리 창섭이 오늘부터 개명해, 호섭이로.
야, 이 미친놈아!


성재가 꺽꺽대며 손을 휘두르는 창섭을 피해 내달렸다. 창섭이 그런 성재의 뒤를 쫓았다. 육성재 잡히면 뒤진다!!!!

 

 

*

 

 

"창섭이 이발했네?"
"창섭이 머리 귀여운데?"

 

 

쏟아지는 말들에 창섭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네 이제부터 머리얘기 하지마!

 

 

"왜애, 귀여운데."
"닥쳐, 육성재. 너 집에 갈 때 보자."

 

 

창섭이 옮긴 자리에 앉았다. 성재는 1분단 끝자리에, 창섭이는 3분단 끝자리에 앉았다. 완전히 정 반대로 앉아버려서 이렇게 삐질때면 풀 새도 없이 수업을 계속 해야 했다. 쉬는시간에도 묘하게 교무실이며 매점이며 성재를 피하는 바람에 항상 집에 가는 길에야 삐진 것을 풀어야 했다.


아무튼 성재는 오늘 또 망했다는 것이다. 입이 방정이지, 방정이야. 그래도 호섭이는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한데.

 

 

*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반 아이들이 교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성재가 가방을 매곤 창섭의 책상 앞으로 갔다.

 

 

"아직도 삐졌냐?"
"말 걸지 마라."
"에헤이- 진짜 오래가네, 이창섭. 남자가 그렇게 속 좁으면 쓰냐. 얼른 가자."

 

 

성재가 일으켜 세워주니 창섭이 가방을 메고 나온다. 창섭에게서 열쇠를 가져온 성재가 반 문을 잠그고 학교를 나왔다. 둘은 항상 걷던 길을 걸어 창섭의 집으로 들어왔다.

 

 

"어, 이제 꽃 떨어지나보다."
"그런가보네. 야, 배고프다. 주방 가서 라면 좀 끓여와봐."
"저기요, 여기 너네 집이거든요?"
"파 빼고 계란 넣어!"

 

 

진짜, 그래도 아직 덜 풀린 것 같아 시키는대로 해야 될 것만 같다고 느낀 성재였다. 냄비에 물을 받아 끓이고 있으니 주방 문을 열고 창섭이 들어왔다.

 

 

"뭐, 내가 못미덥냐?"
"어. 너는 어떻게 된게 라면도 하나 제대로 못끓여서 문제야. 진짜 어떡하려고 그러냐?"
"라면 안 쳐먹어도 알아서 잘 산단다, 호섭아."
"이게 진짜,"

 

 

뒷통수를 때리는 창섭에 성재가 악, 하는 소리를 냈다. 아 왜 때려어!

 

 

"맞을 짓을 하니까 때리지. 비켜 내가 끓일래."

 

 

창섭이 성재를 주방에서 쫓아냈다. 에이씨, 혹 생기겠네. 성재가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창섭의 방으로 향헀다. 방의 벽 한구석엔 액자에 걸린 어린시절 사진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때 받은 상장들이 수두룩했다. 진짜 반장 할 만 하긴 했네. 얼마 있지 않자 냄비를 든 창섭이 받침, 받침! 하며 들어왔다. 책장에 꽂힌 문제집 중 하나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으니 그 위에 냄비를 올리는 창섭이었다.

 

 

"오 역시, 이창섭 하면 라면이지!"
"내가 무슨 라면회사냐? 시끄럽고 먹기나 해."

 

 

창섭이 젓가락을 쥐어주었다. 냄비를 휘저어가며 라면을 건져 먹으니 어느새 냄비에는 국물만이 남았다.

 

 

"아, 배부르다."
"뭐해? 빨리 치워."

 

 

이번엔 성재가 군말없이 냄비와 젓가락을 들고나갔다. 국물을 따라버리고 주방세제가 묻은 스펀지를 집어들자 뒤에서 지켜보던 창섭이 오올, 하며 박수를 쳤다. 설거지도 못하던 남고딩이 설거지를 하려고 하니 대단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냄비와 젓가락을 씻어놓고 주방을 나오자 창섭이 거실에 티비를 켜놓고 앉아있었다.

 

 

"야, 근데 너 집 안가냐?"
"아 맞다. 가긴 가야지."
"나가자, 배웅해줄게."
"배웅까지 해주냐, 고오맙네."

 

 

티비를 끈 창섭이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신발을 신었다. 가방 안 매? 아, 맞다. 성재가 가방을 매고 신발을 신으니 언제 나갔는지 벚꽃나무 아래에 서 있는 창섭이었다. 고작 몇 시간이 흘렀다고 들어갈때와는 다르게 조금씩 많이 꽃잎들이 흩어져 떨어지고 있었다.

 

 

"진짜 예쁘지?"
"어, 예쁘네."

 

 

성재가 꽃잎들이 떨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손을 뻗어 손바닥을 하늘로 향했다.

 

 

"뭐해?"
"떨어지는거 잡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나 뭐라나. 한번 잡아보는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그럼 나도 할래!"

 

 

창섭도 성재의 옆에 서 한 손을 뻗어 손바닥을 하늘로 향했다. 근데 너 이뤄질 사랑은 있냐? 그러는 넌? 있겠냐.


얼마있으니 톡- 하고 창섭의 손바닥 위에 꽃잎이 떨어졌다. 우와아, 그럼 나 이제 사랑이 이뤄져?

 

 

"그런가보지."

 

 

톡, 성재의 손바닥 위에도 꽃잎이 떨어졌다. 꽃잎이 떨어진 손을 쥐었다. 나도 떨어졌다, 꽃잎. 진짜?

 

 

"손바닥 줘 봐."
"손바닥? 자."

 

 

펴진 손바닥 위로 쥔 손을 올려 손을 펴니 창섭의 손바닥 위에 성재가 잡은 꽃잎이 놓여져 있었다.

 

 

"뭐야? 원래 잡으면 이렇게 보여주는거야?"
"아니, 좋아하는 사람이랑 이뤄지려면 이렇게 잡은 꽃잎을 쥐어주는거야."

 

 

아아, 고개를 끄덕이는 창섭이 갑자기 고갯짓을 멈췄다. 너 근데, 설마.

 

 

"어. 맘대로 생각해. 중요한건 너 생각이니까."

 

 

어.. 말문이 막혔는지 어벙벙해진 표정을 짓는 창섭에 볼을 콕 찔렀다.

 

 

"첫 날부터 볼 찔러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찔러보네. 나도 아직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마음 정리도 잘 안되고. 그래도 다른 애들이랑은 달라, 감정이."
"어, 그러니까.."
"생각 정리는 집에 들어가서 해. 봄이어도 해 지면 쌀쌀해. 아, 참 그리고 거절하고 나 모르는 척 하고 그러면 안된다? 그럼 나 간다, 내일 봐."

 

 

ㅇ, 야! 저를 부르는 창섭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성재가 긴 다리로 집으로 돌아갔다. 아직도 창섭은 벚꽃나무 앞에 서 있었다. 성재가 쥐어준 꽃잎을 손에 꼬옥, 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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